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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비인기 종목 선수들은 다 이렇대요."
한국 산악스키Ski Mountaineering(줄여서 '스키모'라고도 한다) 국가대표팀의 정예지 선수가 지난 2월 4일 취재팀과의 인터뷰 중 체념한 듯 말했다. 그녀를 비롯한 5명의 선수들은 당시 '제9회 하얼빈 동계 아시안게임(2월 7~14일)' 출전을 위해 맹훈련 중이었다. 설 명절에도 집에 가지 않았다. 출국이 코앞인데도 스키를 신었다. 그녀를 포함해 이날 모인 5명의 선수는 모두 진이 빠진 표정이었다.
여기서 정예지 선수의 "다 이렇다"는 말은 감독과
전국은행연합회 연봉 코치 없이 선수들끼리 훈련하는 것, 선수 전용 숙소가 아닌 개인이 계약한 '시즌방' 등지에서 머무는 것, 모든 식비와 교통비도 개인이 지불해야 한다는 것, 훈련장이 없어 이곳 저곳 기웃대며 서성이는 것 등을 가리킨다. 즉 국가를 대표하지만 정작 '국가'는 이들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고 '협회'의 대응 또한 차가운 상황을 일컫는다.
산악스키
제일은행 는 스키를 신고 산을 오르거나 걸은 뒤 활강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속도를 겨루는 스프린트, 혼성 계주 등으로 나뉜다. 2021년 7월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고, 내년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밀라노-코르티나 동계올림픽이 공식 첫 경기다. 금메달이 무려 5개나 걸려 있다. 이것은 산악스키가 세계적으로 꽤 인기가 있다는 방증이다. 한국 상황은 어떨까? 그와
한국장학재단 전환대출 2차 신청 정반대다. 선수가 얼마 없다.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우선 한국의 겨울은 짧다. 산악스키를 탈 수 있는 곳도 드물다. 스키장 슬로프를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방법이 있지만 스키장이 문을 열기 전, 새벽에 도둑처럼 올라야 한다. 이걸 그나마 허락해 주는 스키장도 용평리조트밖에 없다. 장비도 비싸다. 그러니까 한국에서 산악스키를 타려면 어마어마하게 두꺼운 진입
일반과세 장벽을 뚫어야 한다. 그 장벽을 뚫고 지난해 가을에 열린 산악스키 국가대표 선발전에 참가한 여자 선수는 고작 5명이었다.
정예지를 비롯한 산악스키 국가대표 선수들은 "다 이렇다"는 통설에 맞서거나 대꾸할 여유조차 없었다. 국가대표로 뽑혔는데 심하게 어려운 환경 탓을 하며 포기할 수는 없었다. 기왕 한 김에 해보자는 의지가 강했다고 봐야 한
채무감면 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의지는 보통의 강도가 아니었다. 나는 그들 각자가 국가대표 타이틀 뒤에 있을 뭔가를 노린다고 짐작했다. 그렇지 않고서 만만치 않은 손해를 감수하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왜 국가대표가 됐을까? 선수 한 명 한 명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속마음을 들여다봤다.
*산악스키 국가대표 6명 중 오영환 선수는 개인 스케줄 때문에 인터뷰에 참여하지 못했다.
정예지(35세, 넬슨스포츠 마케팅팀)
직장과 국대 훈련 병행…내가 좋아하니까 견딘다.
정예지 선수는 국가대표로서의 사명감과 책임감이 두텁다. 산악스키에 대한 애정도 각별하다. 경력과 실력 면에서 국내 최상급이다. 이에 따라 이번 대회 때 국가대표 '주장' 역할을 소화했다. 직장 생활을 하는 내내 경기 출전을 위한 여러 행정절차를 처리했고, 그 와중에 훈련도 진행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이번 시즌 그녀는 '혼돈의 도가니' 속에서 지냈다.
산악스키는 언제, 어떻게 접했나요?
20대 중반쯤일 거예요. 어렸을 때부터 스키를 너무 좋아해서 대학 입학 후 대학스키연맹 산하 스키부 활동도 하고, 스키장에서 강사로 일하기도 했어요.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는 알파인 스키 NTO(경기전문운영인력)로 일을 하기도 했고요. 당시 운영 스태프로 일하며 슬로프에서 선수들을 바라보기만 했는데, 이번 2025 아시안게임에서는 산악스키 종목의 국가대표 선수로 직접 경기에 참여하게 되어 감회가 남달랐습니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준비하다가 산악스키라는 종목이 있다는 걸 알았어요. '산악스키협회'의 존재도 이때 처음 알았죠. 협회에 전화했더니 '정만' 이사가 "장비를 빌려줄 테니 와서 타보라"고 하기에 그걸 빌려서 새벽에 발왕산에 올라갔어요. 그때가 2017년인가? 그랬을 거예요.
슬로프를 처음 거슬러 올라갔을 때 힘들지 않았나요?
이전까지 스키를 타면서 땀을 흘린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슬로프를 거꾸로 올라가면서 땀을 엄청나게 쏟았어요. 너무 신기했어요. 트레일러닝을 하는 거랑 기분이 비슷했죠. 새로운 세계를 만난 것 같았어요.
산악스키를 대하는 마음이 그때와 지금이 똑같을까요?
마음은 같죠. 다만 지금은 현실에 좀 찌들었다고 할까요?
주변의 어떤 요소가 현실에 찌든 느낌을 주던가요?
산악스키나 트레일러닝만 해서는 생계를 이어나가기 어렵잖아요.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돈도 벌 수 있는 직장을 찾다가 지금 회사에 들어왔어요. 누구보다 회사 생활을 열심히 했어요. 하지만 일을 하다 보니 혼란스러웠어요. 지금보다 더 열심히 일을 해서 직업적으로 성장을 하는 것이 맞는지, 아니면 더 늦기 전에 선수생활에만 집중해야 할지 같은 고민을 했죠.
그 혼란의 결정타를 맞은 게 이번 아시안게임 준비일까요?
그렇긴 해요. 왜냐하면 아무리 아시안게임이라도 국가대표잖아요! 대충해선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직장을 그만둬야 할까?' 고민했어요. 그런데 그냥 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 보자고 마음먹었죠. 산악스키 선수로 활동한다고 돈이 나오는 게 아니니까요. 지금도 선수랑 직장인 사이 정체성 혼돈이 있지만, 좋은 선택이었어요.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 사정을 많이 봐주는 편인가요?
네! 너무 많은 편의를 봐주고 있어요. 회사에서 출장으로 인정해 줬어요. 훈련을 하기 위해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어요. 20일, 3주 정도 양해를 구했죠. 물론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다행히 이해해줬어요. 혼란함 속에서 그래도 앞으로 갈 수 있는 샛길을 찾은 것 같았어요.
국가대표 활동을 하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무엇인가요?
이전까지 동호회 성격으로 만나 어울렸던 선수들과 한팀이 되어서 훈련하고 생활한 모든 순간들이 가장 좋았어요. 또 우리를 위해 기꺼이 도움을 준 많은 분들을 알게 된 것도 좋았고요. 이전에는 그들과 좀 느슨하게 연대했다면 이번을 계기로 연대가 더 강해졌다고 느꼈어요. 도움준 분들이 많은데 그중에서 특히 매 주말 우리들의 훈련과 훈련 중 식사는 '정만' 선생님이 헌신적으로 지원했어요. 조좌진 대한산악연맹 회장님도 큰 도움을 주셨습니다. 취임 후 가장 먼저 선수들의 고충을 듣고 지원해 줬어요. 500만 원의 격려금과 300만 원 상당의 장비를 전달받았어요. 산악스키 선배분들도 직접 시간을 내서 인터벌 훈련, 다운힐 훈련, 레이싱 훈련 등을 함께 진행해 주기도 했고요. 각종 간식, 음식 협찬, 금일봉, 출국 전 짐패킹, 필요한 장비 대여 등 다양한 방법으로 힘을 모아 주셨어요.
가장 힘들었던 점은 뭐죠?
직장인으로서 역할을 충실히 하면서도, 선수의 역할을 해내는 것, 부가적으로 선수들 사이와 협회, 연맹 사이를 왔다갔다하면서 아시안게임 참여를 위한 행정처리나 각종 요청과 요청에 대한 조율 등을 해야 하는 것, 그러면서 개인 일상도 정상적으로 하는 최소한의 것들 사이에서 쉴 틈 없이 달려와야 했던 점이 힘들었어요. 매순간 지쳐 있었어요. 다행히 사랑하는 남편과 가족들, 그리고 회사 임직원 분들, 함께하는 선수들의 배려로 끝까지 할 수 있었어요.
지금 산악스키 국가대표 지원을 위한 시스템은 부족한 점이 많아 보입니다. 비인기종목의 초창기가 모두 그렇다면서 이를 당연시 여기는 풍조에 동의하나요?
동의하지 않습니다. 지금 당장 산악스키 국가대표팀에게 필요한 것은 대회를 위한 훈련 및 기타 모든 행정 절차 등을 진행해 줄 지도자(감독, 코치진)와 국가대표 훈련센터 입촌 등 선수들이 '훈련'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에요. 이를 위해서는 행정 절차상 산악스키가 대한체육회가 지정하는 강화종목으로 선발돼야 예산이 편성된다고 하는데요, 이번 시즌에는 모든 것들이 그런대로 준비될 것으로 예상했어요. 결국 이뤄진 건 얼마 없었죠. 이 부분이 조속히 해결되어 선수들이 오로지 훈련에만 집중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어야 해요.
구교정(33세, 경북대학교산악회)
국대 타이틀 획득보다 '팀' 얻은 것이 더 기뻐
구교정 선수는 더 재미있는 모험 활동을 위해 산악스키에 입문했고, 열심히 타다 보니 국가대표팀에 합류한 케이스다. 대학교 산악부 출신인 그는 전문 등반을 통한 해외 원정에 관심이 많은데 그에 따라 사계절 내내 산에서 트레일러닝이나 여러 등반을 하면서 빈틈없이 운동한다. 지금까지 산에 다니면서 선배들에게 받은 걸 갚겠다는 마음과 후배들에게 본받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크다.
어쩌다 대학교 산악부에 가입했을까요?
뭐, 아마 산악부 활동을 했던 분들 모두 비슷할 것 같은데, 동아리 활동은 하고 싶은데 갈 데가 딱히 없어서 산악부에 찾아갔어요. 가니까 공짜로 밥 사주고 하니까 계속 활동한 거죠. 그런데 그게 제 인생의 터닝 포인트였어요. 몸 쓰는 운동을 그때 처음 시작했어요.
대학교 산악부라면 산악스키보다 빙벽등반에 더 관심을 가졌을 법한데요? 어쩌다 산악스키를 하게 됐죠?
대구에 '대구클라이밍스쿨'이라고 있어요. 거기 형들이 산악스키를 타고 있었어요. 2018년쯤이었는데, 그 형들 따라다니면서 스키를 배웠어요. 그러다가 코로나가 터지는 바람에 같이 다니기가 힘들어졌어요. 그때부터 겨울이면 혼자 시즌방을 잡고 스키장에 가곤 했어요. 빙벽등반보다 산악스키가 더 재미있었어요.
산악스키를 배운 건 해외원정 등반을 염두에 둔 걸까요?
그랬던 것 같아요. 학교 다닐 때는 매년 원정을 나갔고, 그러면서 SNS에서 산에서 스키 타는 영상이나 사진을 접한 게 저에게 영향을 준 것 같아요. 처음에는 설사면을 '활강'하는 데 관심이 더 많았죠. 그것이 차츰 '투어링'으로 바뀌었어요. 스키 신고 산을 이리저리 다니는 거죠. 스키를 메고 등반하거나 활강하는 식으로요. 그렇게 3년 정도 스키를 탔어요. 형들 따라서 새벽에 스키장에서 업힐을 하기도 했죠. 그때 투어링 스키로 업힐을 했는데 아무리 해도 1시간 기록이 안 깨지는 거예요. 그러다가 레이싱 스키로 바꾸고 나니 50분대로 줄더군요. 이후 그 기록 줄이기에 재미를 들이면서 산악스키 경기에 더 깊이 빠졌어요.
작년에 국가대표 선발전을 치렀죠? 결과가 어땠나요?
성적이 그리 좋지 않았어요. 재작년 대회 결과가 좋았죠. 제 위로 지성이형(김지성 선수)밖에 없었는데 그 형을 제치고 처음으로 1등을 했거든요. 그 성적 덕분에 운좋게 이번에 국가대표가 됐죠. 국가대표가 됐다고 해서 특별히 사명감이 더 생겼다거나 하진 않아요. 이전부터 선배들이 저를 많이 챙겨줬거든요. 저를 데리고 다니면서 밥까지 사주셨죠. 거기에 보답해야겠다는 마음이 있었고, 후배들한테도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도 있었고요. 그래서 열심히 한 것뿐이에요.
아무래도 이번 시즌은 국가대표 활동을 하느라 특히 힘들었을 것 같은데요?
저는 좋았어요! 작년과 재작년에는 혼자 운동했거든요. 혼자서 주말 새벽에 용평리조트에 가서 2시간 반 정도 슬로프를 오르락내리락 했죠. 그때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라는 우울감까지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매일 같이 운동할 사람이 있으니까 너무 재미있어요. 하나도 외롭지 않았어요.
국가대표 타이틀을 얻은 것보다 함께 운동할 수 있는 클럽이 생긴 것이 본인에겐 더 좋군요?
네, 맞아요. 지금이 좋아요!
한국에 본인 같은 선수가 적은 이유가 뭘까요?
허들이 너무 높아요. 먼저 장비가 비싸요. 비용이 어마어마하게 들죠. 저에게도 벅찬 수준이긴 해요. 산 좋아하고 스키 타는 거 좋아하니까 이렇게 하는 거죠. 그 외 대회 참가만을 목적으로 한 스포츠 종목 선수로 접근하기엔 상당히 무리가 있을 거예요.
훈련은 주로 주말에 진행돼요. 금요일 퇴근하자마자 용평스키장으로 달려가야 하고요. 다음날 새벽 일찍 일어나서 스키장으로 가서 리프트가 운영되기 전 2시간~2시간 30분 정도 슬로프에서 업힐 훈련을 합니다. 직장인이라면 일주일에 훈련할 수 있는 시간이 4시간밖에 없어요. 이런 생활을 겨울 내내 해야 해요. 일본처럼 눈이 오랜 기간 많이 내리는 지역이 있다면 가능할 텐데, 그렇지 않은 국내 상황에서 산악스키를 스포츠 종목으로만 대하면 굉장히 힘들 거예요.
선수들에게 도움을 줄 수 없는 연맹 입장을 어느 정도 이해하겠군요?
이해가 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하고 그래요. 지금 협회(대한산악스키협회)는 수익 구조가 아예 없으니까요. 협외 임원들이 임금을 받는 것도 아니고요. 다들 각자 삶이 있는데 우리만 봐달라고 할 수도 없잖아요. 어떻게 보면 생판 남이잖아요.
아시안게임 경기가 끝나고 계획이 어떻게 되나요? 다음 산악스키 국가대표 선발전에도 참여할 건가요?
훈련한다고 못 놀고 있어요. 빨리 끝내고 산에서 놀 생각뿐이에요. 아, 그리고 기량이 좋은 후배들이 빨리 나타났으면 좋겠어요. 후배들에게 밀릴 때까지 산악스키를 즐기는 동호인으로서 계속 국가대표 선발전에 참여할 계획이에요.
김미진(27세, 회사원)
국대 선발전 출전 여자는 딱 5명, 그중 2등으로 뽑혀 '얼떨떨'
김미진 선수는 자신이 국가대표에 뽑힌 상황을 두고 "얼떨떨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열린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2위를 차지해 얻은 결과지만 본인이 가진 실력에 비해 너무 큰 기회를 얻은 것 같다고 했다. 그녀는 올해로 스키장에서 세 번째 시즌을 맞았고, 그동안 국내에서 진행된 산악스키 대회에 딱 한 번 출전한 경험이 있다. 거대한 낯선 상황 속에서 그녀는 살짝 겁을 먹은 눈치였다.
산악스키는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거죠?
우연히요. 대학교 때 산악부였어요. 클라이밍을 주로 하다가 3년 전쯤 스키를 처음 탔어요. 선배가 장비를 빌려준다고 해서 따라갔다가 시작했어요.
산악부에 왜 가입한 거죠?
대학교 들어가기 전에 등산을 한 적이 없었어요. 잘 모르겠어요. 그때 뭔가가 저를 등떠민 것 같아요. 4학년 때 가입한 건데,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빙벽등반보다 스키를 타는 게 더 좋았나보죠?
빙벽등반도 몇 번 했는데, 그러게요. 왜 빙벽 말고 스키를 탔을까요? 빙벽이랑 스키를 둘 다 하기엔 시간이 많이 부족하더라고요. 아마 겨울 산을 색다르게 즐긴다는 데서 스키에 더 끌렸던 것 같아요. 예를 들어서 북한산에 등반하러 가는 거랑 하이킹하러 가는 거랑 다르잖아요. 제가 봤을 때 스키는 하이킹에 더 가까운데, 장비를 착용하고 걸어올라가는 방식이 재미있었달까요?
어쩌다가 국가대표 선발전에 참여한 거죠?
국내에 산악스키 선수가 많이 없었어요. 여자는 특히 더 그랬고요. 저번 시즌에 아시안컵이 열려서 참가했는데 예지 언니가 1등을 하고 제가 2등을 했어요. 기초체력이 있었다기보다 선수가 워낙 없었으니까 나온 결과예요. 지금 산악스키 선수라고 할 만한 사람들이 제 뒤로 10명 정도 될 거예요. 국가대표 선발전에 나온 여자 선수도 저랑 예지 언니 포함해서 5명뿐이었어요.
국가대표가 될 거라는 확신은 있었겠군요?
대회 성적이 있었으니까 되겠다 싶었어요. 국가대표 타이틀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흔치 않고, '이왕 시작한 거 도전해 보자'는 마음이었어요.
국가대표 활동을 한 다음 이후의 삶이 어떻게 되겠다라는 기대가 있었나요?
기대요? 그런 건 없어요. 지금보다 더 대단한 삶이 펼쳐질까요? 그렇진 않을 거예요. 그냥 흘러가는 대로, 최선을 다하다 보니 이렇게 됐죠. 운이 좋았어요.
가족들은 어떤 반응인가요?
신기해 해요. 뉴스에 나오고, 국가대표 명단에 이름이 올라가 있고 하니.
'국대'가 되기 전 이 생활에 대해 상상했던 것들이 있을 텐데요, 현실과 다른 점이 있을까요?
강화종목으로 지정되면 지도자를 뽑을 수 있고, 다 같이 합숙하면서 좀 더 체계적으로 훈련할 수 있을 거라고 했어요. 그런데 강화종목 지정에 문제가 생기면서 그런 계획들이 모두 사라졌어요. 산악스키는 비인기 종목이니까,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다고 포기한 분위기예요.
국가대표 활동을 하면서 가장 좋은 점은 뭔가요?
마음 맞는 사람들과 함께 훈련할 수 있다는 거요. '지금 뭔가 방치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도움을 주거나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게 다행이라고 느껴요. 덕분에 우리끼리 꽤 단단하게 잘 뭉쳐요.
어려운 점은 뭐죠?
시간이 부족한 거요. 국가대표 선발전만 해도 작년 초에 진행했다면 함께 훈련할 시간이 더 많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어요. 선발전이 지난해 9월에 열렸거든요. 발표는 10월에 했고요. 대회를 몇 달 앞둔 상태에서 선수들이 뽑혔으니, 훈련할 시간이 많이 부족해요.
지금 어떤 훈련을 중점적으로 하고 있을까요?
클라이밍 위주의 운동을 해와서 러닝 비중을 늘리고 있어요. 스키 시즌이 시작되고부터는 업힐 훈련과 기술 변환 연습을 하고 있고요.
이번 동계아시안게임에서 목표하는 기록이나 순위가 있을까요?
저는 목표나 기록을 생각할 정도의 실력이 안 돼요. 그래서 큰 대회에 나가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경험이고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굳이 목표가 있다면 다치지 않는 거요. 그리고 최선을 다하는 거요. 그 두 가지뿐이에요.
경기가 끝난 다음 계획이 어떻게 되나요? 다음 산악스키 국가대표 선발전에도 참여할 건가요?
아시안게임이 끝나면 3월에 한국에서 열리는 아시안컵에 참가할 계획이에요. 그 대회로 시즌을 마무리하고 다시 스키를 탈 수 있는 겨울을 기다리면서 봄, 여름, 가을엔 클라이밍과 트레일러닝을 하면서 지낼 예정이에요.
*김미진 선수는 여자 스프린트 개인전 예선에서 13위에 올랐다. 구교정 선수와 팀을 이뤄 출전한 혼성 릴레이는 10위에 머물렀다.
김하나(25세, 직업 군인)
처음 하는 산악스키, 3주 동안 유튜브로 기술 익혀
김하나 선수는 학창 시절 쇼트트랙 엘리트 선수로 활동했다. 20세까지 선수 생활을 하다가 관두고 해병대에 입대해 군생활 중이다. 국가대표 선수가 되어 큰 경기에 나가는 건 그녀의 오랜 목표였다. 지난 9월 선발전을 거쳐 그 꿈을 이루는가 싶었는데,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 훈련을 위해 직장에서 허락한 시간은 단 3주에 불과했고, 짧은 시간이지만 기회라고 여긴 김하나 선수는 맹렬하게 연습했다. 그녀는 이 시간이 마치 해병대 '극기주' 훈련을 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스키를 탄 경험이 있나요?
취미로 타는 정도였어요. 일반인들처럼 겨울에 한두 번 타는 정도였죠. 3년 정도 탄 것 같네요.
그런데 어떻게 산악스키 국가대표가 된 거죠?
우리 부대에 '산악전 교육대'라는 특수교육대가 있어요. 거기 교육대 소속 최청일 교관이 산악스키를 취미로 하고 있었어요. 어느 날 그분이 '산악스키 입문에 관심이 있는 교육생을 알아보고 있다'고 했는데, 제가 해보겠다고 나섰다가 일이 이렇게 커졌어요.
본인이 산악스키 국가대표가 되겠다는 계획은 없었던 거네요?
네, 맞아요. 교관님이 '선발전이 열리는데 시간이 되느냐'고 물었어요. 선발전 다음날에 하프 마라톤 출전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몸풀기나 하러 가자 하면서 선발전에 출전했죠.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결과가 좋게 나와서 국가대표가 됐어요. 해병대에서도 이런 경우는 최초라고 들었어요. 규정도 없어서 서류를 처리하는 데 꽤 애를 먹었어요. 결국 공가 2주, 연가 1주, 총 3주의 시간을 만들었어요. 제가 이렇게 빠지는 바람에 다른 직원이 불편한 상황도 벌어졌어요. 이래저래 저 또한 마음이 불편한 상황이에요. 하기로 했으니까 하루 하루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국가대표가 됐다는 소식을 접하고 기분이 어땠나요?
당황스러웠죠. 선발전 체력검정에서 상위권 결과가 나왔지만, 이때까지 산악스키 경기 실적이 없었고, 선발전에서 경기실적 비중이 60퍼센트나 되었기 때문에 아무리 체력검정 결과가 좋더라도 국가대표가 되기는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결과를 확인하고 당황스러운 한편 가슴이 뛰더라고요. 학창시절 대부분을 쇼트트랙 엘리트선수로 활동하면서 태극마크를 달아보고 싶다는 간절한 꿈을 단번에, 생각지 못한 종목에서 이루었다니! 어쩌면 인생에서 정말 놓치지 않아야 할 운명적인 기회 중 하나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쇼트트랙 엘리트 선수 생활은 정확히 언제까지 했나요? 왜 그만뒀죠?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때까지 쇼트트랙을 했고요, 실력이 따라주지 않았고요, 집안 사정도 있었어요.
이번 첫 국가대표 활동을 하면서 가장 좋았던 점이 무엇이었을까요?
선발전 결과가 작년 10월쯤 나왔지만 현실적으로 활동한 기간은 이번 아시안게임을 준비하는 3주 정도의 기간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군인이라는 직업 특성상 국가대표 활동을 다른 선수들만큼 참여할 수 없는 부분이 너무 아쉬웠지만, 이번 경기를 준비하면서 혼자가 아닌 산악스키 대표팀 선수들과 함께 운동을 할 수 있었다는 점과, 꿈꿔왔던 큰 대회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 이 정도가 좋았어요.
3주 동안 많이 힘들었겠는데요?
무엇하나 쉬운 게 없었어요. 훈련에 참가하는 것부터 시합에 나가는 것까지 전부요. 이 모든 것을 준비하기 위한 크고 작은 상황들(숙소, 장비, 훈련장소, 훈련방법 등)에서 어려움을 겪었어요. 국가대표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지만 아무 것도 준비되어 있지 않은 현실에 정말 '맨 땅에 헤딩' 하듯 했어요. 산악스키라는 종목을 이해하고 숙달하기에는 적어도 지도자나 마땅한 훈련장소가 있어야 하지만 전혀 없었어요. 그래서 유튜브로 외국선수들 경기 영상을 보며 따라하거나 대표팀 선수들에게 질문을 많이 했어요. 감만 익힌 정도로 숙달을 했어요.
훈련하는 장소도 마땅치 않아 눈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일단 스키를 신었어요. 혼자 훈련할 때에는 눈이 많이 쌓인 운동장이나, 차가 다니지 않는 외곽도로, 스키장 스낵바 앞 등에서 기술변환 연습을 했어요. 4,000원 비용을 지불하면 스키점프대를 사용할 수 있어서 주 3회 정도 스키점프대에서 선수들과 다같이 훈련했죠.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다른 선수들과의 구력 차이가 있어서 기량 차이를 극복하기 어려웠던 점이 정신적으로 힘이 좀 들었어요.
지난 3주 동안 운 적도 있을 것 같은데요?
아니오. 울면 더 서글퍼지고 외로워질 것 같아서 참았어요. 어렵고 막막한 상황이 올 때마다 스스로 새로운 도전의 연속이라고 생각했어요. 마치 게임의 퀘스트(단계)를 깨는 상황으로 세뇌하며 긍정회로를 돌리기 바빴죠. 이 어려운 과정이 지나면 언젠가는 내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할 수 있는 날이 오겠지? 다른 사람들이 나의 이런 과정을 궁금해 할 날이 오겠지? 그때가 오면 당당하게 "잘 이겨냈다, 열악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고 말할 수 있도록 후회없는 노력을 해보자! 라고 생각했어요.
*김하나 선수는 하얼빈 동계 아시안게임 산악스키 여자 스프린트 예선에 통과, 준결승까지 진출했다. 하지만 경기 중 도핑 검사 대상자가 되어 검사를 받다가 경기가 시작되는 바람에 지연 출발했고, 내리막 활강 중 발목 골절상을 입어 결국 완주를 포기했다.
정재원(19세)
"초등 때부터 산악스키…세계대회 1등 하고싶어"
정재원 선수는 산악인이자 산악스키 전문가인 정만씨의 아들이다. 친형인 정인집씨도 한때 산악스키 국가대표로 활동했다. 그 역시 아버지를 따라 어렸을 때부터 산에 다녔고, 산악스키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시작했다. 한국 산악스키 국가대표 선수 중 선수 경력이 가장 길다고 할 수 있다. 본인 말에 따르면, 특기는 스프린트 종목이고, 스피드에서 현재 그를 따라올 사람이 없다. 자신감이 남달랐는데, 그는 인터뷰 때 동계 아시안게임에서 동메달을 목에 거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산악스키를 시작했다고요? 어린 나이에 슬로프를 거꾸로 올라가는 일이 꽤 힘들었을 텐데요?
용평리조트 골드 코스였어요. 슬로프를 거꾸로 올라가는데 너무 춥고 힘들었어요. 슬로프 정상에 서니 해가 뜨더라고요. 멋있었어요. 그 순간 '이거 너무 재미있다!'고 생각했어요. 당시 저처럼 스키를 타는 또래 친구들이 없어서 많이 외롭긴 했지만 막상 바깥에 나와 스키로 정상에 오르면 역시 나오길 잘했다는 기분에 계속 산악스키를 탔어요.
산악스키 국가대표가 된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군요?
네, 뭐 그렇긴 하죠. 국내에서 지금 저만큼 열심히 하는 사람 많지 않을 거예요.
부모님이 지원도 잘 해주시겠네요.
네, 맞아요. 아버지가 음식점을 운영하세요(아버지 정만씨는 요리사이기도 하다. 극지연구소 남·북극 연구대와 동행하면서 요리와 안전을 담당하기도 했다). 덕분에 선수들 숙소 냉장고에 있는 음식들은 모두 아버지가 만들어서 갖다 주신 거예요. 당연히 어머니도 많이 도와주시고요. 형도 스키를 타는데, 여러모로 도움을 받고 있어요. 가족에게 늘 감사합니다.
국가대표가 되고 싶은 욕심도 어느 정도 있었겠네요?
그렇죠. 이전까지 산악스키는 상비군만 뽑았어요. 그래서 저의 경우 애매한 경우가 많았죠. 친구들이 늘 "너 국가대표니?"라고 물어봤어요. 그 질문에 항상 이렇게 답했어요. "맞기는 하지만 아닐 수도 있다"라고. 그래서 타이틀을 얻는 게 중요했어요. 대학 진학할 때도 분명 유리할 거고요. 제 미래를 놓고 본다면, 국대 타이틀을 통해서 잃는 것보다 얻는 게 더 많을 거예요.
이제 선수라는 느낌이 들면서 소속감이 생겼겠군요?
딱히 그렇지는 않아요. 감독이나 코치가 있다면 그런 생각이 확실히 들 거예요. 저를 비롯해서 같이 훈련하는 선수들도 모두 비슷할 거예요. 국가대표 선수라고 하지만 모든 훈련과 필요한 행정 절차를 선수들이 자체 해결하고 있어요. 모두 자신이 국가대표 선수라고 느낄까요?
산악스키를 통해서 이루고 싶은 게 많을 것 같은데요?
네! 세계 대회에 나가 1등을 하고 싶어요. 다음 시즌부터는 일본이나 유럽에 가서 훈련해야겠다는 계획도 갖고 있어요. 외국어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어요.
일본이나 유럽, 중국 선수들과 격차가 꽤 큰 걸로 알고 있는데, 금방 따라잡을 수 있을까요?
네, 중국 선수들 실력이 굉장히 좋아요. 그 선수들은 밥먹고 스키 타고 밥먹고 스키 타고 했을 거 아녜요? 저는 학교 수업 끝나면 자전거를 타거나 운동 조금 하고 공부를 했죠. 스키만 죽어라 탄 게 아니라는 거죠. 그럼에도 아시아챔피언십 때 중위권을 했으니 가능성이 있다고 봐요. 이전에 제 기록은 4분대였어요.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3분 20초, 3분 10초대 기록이 나왔어요. 이제 '해볼 만하다! 지금보다 더 열심히 하면 되겠다!'는 느낌이 들어요.
지금보다 시스템이 갖춰지면 발전이 더 빠를까요? '연맹의 시스템 개선' 같은 거요.
간단히 설명하면, 먼저 산악스키 연맹을 볼게요. 협회 임원 중 산악스키와 관련된 경험이 있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우리하고 같이 새벽에 스키장 나와서 업힐을 하는 사람조차 드뭅니다. '산악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죠. 그래서인지 열악한 상황 자체를 아예 모르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임원이 아닌 분들에게서 오히려 더 많은 도움을 얻었어요. 어떤 분은 밥 사먹으라고 30만 원을 주신 적이 있고요. 간식 같은 것도 보내 주시고요.
산악스키가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된 후 예전과 달리 변화된 게 있을 법도 한데요?
당연히 있죠! 새벽에 업힐하려고 가면 종종 모르는 얼굴들과 마주칠 때가 있어요. 예전에는 다 아는 사람들이었죠. 스키숍 분위기도 좀 달라졌어요. 이전에는 알파인 스키 용품만 팔았다면 지금은 백컨트리나 산악스키 용품을 파는 곳도 눈에 띄어요. 이런 점 때문에 희망을 가지고 있어요.
이번 아시안 게임이 끝나면 다음 목표는 뭐죠?
3월 말 열리는 프랑스 유스 월드컵에 출전해요. 이때 좀더 잘 해보려고요. 선발전에는 계속 참여할 겁니다!
*정재원 선수는 하얼빈 동계 아시안게임에서 개인 스프린트 종목 준결승에 진출, 2분 54초 10의 기록으로 7위에 올랐다. 1위를 차지한 중국 선수와 약 20초 차이다.
월간산 3월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