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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 세인트빈센트병원에서 근무하는 류이슬씨 모습. 류씨는 알레르기 검사 중 발생할지도 모를 응급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정맥관을 미리 삽입하고 있다. 류이슬씨 제공
우리는 일을 해서 돈을 벌고,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보람도 얻습니다. 지금 한국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일 이야기를 ‘월급사실주의’ 동인 소설가들이 만나 듣고 글로 전합니다.
일하는 사람의 초상 l 호주 최대 HIV 치료기관에서 일하는 면역 전문 간호사
호주(오스트레일리아) 병원에서 일하는 한국 여성 간호사. 시작은 그랬다. 그는 당시를 돌이키고는 인종차별의 경험을 떠올렸다. 한번은 8
대전중고차대출 6살의 환자와 동행한 중년의 딸이, 귀가 잘 들리지 않는 환자에게 그의 문진을 전달하는 대신 이렇게 농담을 했다. “저 간호사가 아버지한테 관심이 있대요. 결혼하고 싶대요.” 그는 그들이 응급실에 와 있다는 점을 상기시키며 부적절한 발언을 자제시켰지만 상대는 멈추지 않았다. “당신 나라 여자들은 노인들과 결혼하는 걸 좋아하잖아요?”
이 말
캐피탈대환 이 무슨 뜻인지 한국 독자들은 단박에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다. 비유하자면, 한국 병원에 농사짓는 노인을 모시고 온 중년의 보호자가 젊은 동남아 여성 간호사를 아버지와 엮으며 “당신 나라 여자들은 나이 많은 농촌 남자들이랑 결혼하는 걸 좋아하잖아요”라고 말한 것과 같다. 이외에도 그는 ‘아시아 여성’으로 분류되어 온갖 인종차별적인, 성적 농담에 시달려야 했
농협신용카드연체 다.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말은 기본이고요. 눈을 찢으면서 말하는 환자도 있었어요. 자신의 성기를 검진하는 제게 어느 나라 남자의 성기가 더 낫냐고 묻는 남자 환자도 있었고, 호주 남자랑 결혼해서 억양을 부드럽게 고치라는 환자도 있었어요.”
명백한 인종차별이자 성차별이었다. 그때마다 그는 매니저에게 보고했고, 문제를
금융119 일으킨 환자와 분리 조처되었지만, 그 순간의 충격과 분노는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았다. 심장이 뛰고 팔다리가 떨릴 정도로 화가 났다.
그러나 지금 그는 더는 그런 일을 겪지 않았다. 인종차별과 성차별에서 자유롭다고 말했다. 현재 근무하는 병원으로 옮기면서 생긴 변화였다.
류이슬. 서른여덟의 그가 면역 전문 간호사로 일하는
청약 1순위 곳은 호주에서 가장 큰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에이치아이브이) 치료기관이 있는 세인트빈센트병원의 면역 감염내과다.
“병원마다 내세우는 슬로건이 있어요. 기관에서 중요하게 보는 가치니까 면접을 볼 때 꼭 외워야 하죠. 우리 병원은 그중 하나가 ‘편견 없는 치료’예요.”
이는 편견을 가지지 않는 것, 차별하지 않는 것이라고 의역할 수도 있고, 확대해석하자면 모든 편견과 차별에 반대한다는 것이 병원의 슬로건이라고 볼 수도 있다.
“기업 가치라는 게 면접 때나 달달 외우지 실제 현장에서는 완전히 잊히기 마련이죠. 다른 병원들은 그랬어요.”
류씨는 세인트빈센트병원만큼은 달랐다고 강조했다.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에이즈가 창궐했을 때, 병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 모든 병원이 치료를 거부했어요. 속수무책으로 환자들이 죽어 나가던 때에 세인트빈센트병원은 호주에서 유일하게 에이즈 환자를 받았죠. 그래서 지금까지 우리 부서에 호주에서 에이즈 환자가 제일 많이 모여요. 동성애자 환자가 많죠. 성소수자가 자주 앓는 질병을 편견 없이 치료하는 병원인 거예요. 슬로건처럼. 성소수자로서 겪는 차별에 반대하면서 다른 소수자를 차별하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그래서 병원 내 인종차별이 없어요.”
류씨는 자신 있게 말을 이어갔다. 지독한 인종차별을 겪은 사람이 직접 하는 말이기에 더욱 신뢰할 수 있었다.
“병원의 가치에 공감하는 의료진이 전국에서 모이는 것 같아요. 의료진 중에서도 성소수자가 절반이 넘어요. 의사, 간호사, 환자들 중에 성소수자가 압도적으로 많으니까 아이나 가족이 없는 사람이 많아요. 그래서 서로의 가족이 되어주죠.”
류씨는 자신은 성소수자가 아닌데도 가족이 없다며 농담을 했다. 그래서 그들과 가족처럼 지낸다고. 물론 류씨에게는 가족이 있다. 바다 건너 한국에. 그러니 그도 그들과 같은 소수자이다. 모국을 떠나 타국에서 살아가는 이민자라는 소수자.
면역 전문 간호사로서 자가면역질환인 에이즈 환자를 자주 만나며 그는 에이즈 환자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했다.
“어릴 때 한국에서 유명한 가수가 에이즈에 걸렸다는 루머가 퍼진 적이 있어요. 엄마한테 ‘에이즈가 뭐냐?’고 물어봤더니 엄마가 ‘죽을병’이라고 답했죠. 성병. 죽을병. 저도 에이즈라는 질병이 성관계를 문란하게 가지면 걸리고, 걸리면 죽는다고 생각하며 자랐어요. 간호학을 공부하며 그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됐고요.”
류씨는 누구나 걸릴 수 있다고 몇번에 걸쳐 힘주어 말했다. 그리고 이제는 관리가 가능한 질병이라고. 현장에서 환자 집단을 돌보며 목격한 사실이라고 했다.
“에이치아이브이는 바이러스이고, 그것이 발전되어 나타나는 질병이 에이즈예요. 90년대에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 약이 개발돼 에이치아이브이 전파를 예방할 수 있게 됐고, 바이러스가 에이즈로 발전하지 않도록 막을 수 있어요. 바이러스 보균 상태에서 약을 먹으면 에이즈로 발전하지 않는 거죠.”
류씨는 자신이 돌본 한 환자의 사례를 들려주었다.
“그분이 에이치아이브이에 감염됐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가 70년대 후반이었어요. 직장에서 쫓겨나고, 가족들도 거리를 두었죠. 그분이 우리 병원에 와서 치료를 받았고, 약을 먹으면서 에이즈로 발전하지 않았고, 95살까지 큰 문제 없이 사셨어요.”
에이치아이브이 환자 관리에 대해 주로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사실 면역 전문 간호사로서 류씨가 더 집중하는 일은 따로 있다. 화요일과 수요일, 매주 이틀 동안 환자의 알레르기에 대한 오인을 바로잡는 ‘라벨 제거’ 업무를 수행한다.
“페니실린 알레르기가 의심되어 병원을 찾는 환자들이 가끔 있어요. 그런데 페니실린은 치료에 필수적인 경우가 많거든요. 패혈증에 걸려서 응급실에 실려 왔는데 페니실린을 못 써서 죽는 일이 있으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환자의 알레르기가 진짜인지를 가려내는 게 중요하죠. 과거에 부족한 의료 지식으로 다른 요인에 대한 반응을 페니실린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으로 오진한 경우가 많았거든요.”
그렇게 류씨는 환자에게 붙은 알레르기 라벨을 떼 내는 일을 한다. 환자의 알레르기 반응 병력을 보고 의사와 회의해 결정된 의료 시술 절차를 수행한다. 처음에는 약의 성분을 미약하게 피부에 테스트하고, 점차 강도를 올린다. 경구 테스트도 같은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제까지 세인트빈센트병원에서 5년간 일하면서 류씨가 맡아서 검사한 환자 중에 실제 알레르기가 아닌 것으로 밝혀진 경우가 90%를 훌쩍 넘을 만큼 많았다고 한다. 그만큼 병력을 꼼꼼히 살펴 안전한 경우만을 선택해서 시행하기에 그렇다.
인터뷰가 진행된 지난 1일이 ‘게이의 크리스마스’라고도 하는 호주 최대 규모의 성소수자 페스티벌 마디그라 축제날이었다. 서수진 작가가 축제 참가자에게 사진을 찍어 온라인에 올려도 되는지 묻자 참가자가 흔쾌히 승낙했다. 서수진 작가 제공
그럼에도 평생을 알레르기가 있다고 믿어온 약품이나 음식을 복용할 때 환자들은 대부분 불안을 호소한다. 심한 경우 호흡곤란을 느끼고, 공황 발작이 오기도 한다. 그때 정확한 검사를 통해 노련하게 환자의 불안을 잠재우는 것이 류씨의 몫이다.
“플라세보 효과 아시죠? 그 반대가 노세보 효과예요. 객관적인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나지 않는데도 환자의 불안감 때문에 몸이 가짜 반응이나 주관적 반응을 만들어내는 것을 노세보 효과라고 볼 수 있죠. 이걸 잠재우기 위해 플라세보 효과가 필요해요.”
류씨는 플라세보 효과를 끌어내는 게 자기 일이라고 말했다.
“제가 충분히 교육받은 전문가이며, 얼마나 많이 이 검사를 해왔는지, 모든 검사가 안전하게 이뤄졌고 유의미한 결과를 끌어냈다는 걸 보여줘서 환자를 안심시켜야 해요. 환자가 의료진을 믿고 신뢰하면 플라세보 효과가 생겨나요. 그 효과가 엄청나죠. 그렇게 의료진과 환자가 치료를 같이 하는 거예요.”
내가 호주 공립 병원에서 수술받았을 때의 경험이 떠올랐다. 15분 정도 걸리는 간단한 수술이었지만 전신마취를 해야 해서 몇달 동안 대기한 뒤에 받는 수술이었다. 그때 수술 전 문진을 담당하는 간호사부터 이동과 관리를 담당하는 간호사, 마취과 의사와 간호사,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와 보조하는 간호사들이 모두 자기소개를 해서 놀랐다. 그들은 자신이 무엇을 담당하고 있는지 말했고, 오늘 내 수술에서 자신이 맡은 업무를 소개하고는 내게 끼칠 불편에 대해 사과했다. 질문이 많아서 미안하다든지, 알코올 솜이 차가워서 미안하다든지…. 수술에 대한 설명은 아주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이어졌고, 드문 부작용에 대해서도 확률을 정확한 수치로 말해주었다. 부작용 증상이 있을 경우의 대처 방안 역시 꼼꼼히 알려주었다. 의료진 모두가 나를 진심으로 돌봐준다고 느꼈고, 나는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하게 수술에 임할 수 있었다.
내 경험을 나누니 류씨는 끄덕거리며 웃었다. 그리고 내가 미리 보냈던 질문지에 대한 답을 해주었다. 환자와의 관계가 일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대한 질문이었다.
“99%예요. 환자와 쌓아가는 신뢰는 정말 큰 비중을 차지해요. 그게 치료의 전부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류씨는 신뢰 관계를 바탕으로 이 병원에서 환자들의 라벨을 떼어준다. 오랫동안 잘못 붙어 있던 라벨을 떼어주는 일은 환자의 삶을 완전히 뒤바꾸기도 한다. 간호사님이 나를 살려주었다고 찾아와 감사 인사를 건네는 환자도 있었다. 그리고 류씨의 삶도 바뀌었다.
“지금 병원에서는 인종차별이나 성차별을 겪은 적이 없어요. 여기서 저는 한 사람의 간호사로서 공정하게 대우받고 존중받는다고 느껴요. 이 일에 보람과 긍지가 크죠. 지금은 진료가 가능한 간호사로 승진하기 위해 포트폴리오를 준비 중이고요.”
세인트빈센트병원에서 그는 ‘한국인’이라는 라벨, ‘여성’이라는 라벨로부터 자유롭다. 그건 ‘성적으로 문란한 동성애자’라는 잘못된 라벨을 떼어내고 치료에만 전념한 세인트빈센트병원의 의료진으로부터 나왔다. 질병과 동시에 편견과 싸워야 했던 성소수자들을 돕자, 엉뚱하게도 혹은 필연적이게도 한국 출신 간호사의 인생이 달라진 것이다.
인터뷰를 진행한 시내의 카페에는 무지개색 옷을 입은 사람들이 바쁘게 오갔다. 마디그라 축제날이었다. ‘게이의 크리스마스’라고도 하는 호주 최대 규모의 성소수자 페스티벌이 그날이었던 것이다. 갑자기 당겨진 마감에 급히 잡은 인터뷰 약속이라, 계획한 것도 아니었는데 성소수자 이야기를 하는 내내 눈앞에 무지갯빛 사람들이 오가는 것이 신기했다.
소설가 서수진. 본인 제공
“우리는 이렇게 모두 연결되어 있어요. 그렇죠?”
류씨는 내 말을 이해하고 웃었다. 정말 그렇다고 긍정하면서.
♣H6 소설가 서수진
소설가 서수진 l 월급사실주의 동인. 장편소설 ‘코리안티처’ ‘올리앤더’ ‘다정한 이웃’, 중편소설 ‘유진과 데이브’, 단편소설집 ‘골드러시’를 출간했다. 2020년 ‘한겨레문학상’, 2022년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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