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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들은 정치 상황에 따라 물도 함부로 못 마시는 경우가 있다.
지난해 11월4일 국민의힘 최고위원회의 자리에서 있었던 일이다. 추경호 원내대표가 회의를 시작하면서 목이 탄 듯 물병 뚜껑을 열자 그 자리에 있던 사진기자들의 카메라가 일제히 추 원내대표를 향했다. 당시는 ‘김건희 특검법’과 ‘명태균 게이트’로 온 나라가 시끄러워 대통령의 지지율이 하락할 때였다. 이날 열린 회의에서 한동훈 대표는 윤석열 대통령에게 사과와 국정쇄신을 요구했다. ‘비윤’이면서 동시에 집권여당의 ‘넘버1’이 대통령에게 반기를
중도해지 드는 현장에서, 바로 옆자리에 앉은 핵심 ‘친윤’인 ‘넘버2’가 목이 타듯 물을 마신다? 물이 입으로 향하는 순간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카메라의 플래시가 일제히 터졌을 것이다. 그때 이를 눈치챈 백전노장(?) 김재원 최고위원이 낮은 목소리로 ‘지금 물을 마시지 말라’고 말리자 추 대표가 멈칫하며 주위를 둘러보고는 물이 담긴 병을 내려놓았다.
생활비대출 지급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가운데)가 지난해 11월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물병을 들자 김재원 최고위원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오른쪽은 한동훈 대표.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유독 정
본등기 치인들은 물을 마시는 것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특히, 정치적으로 미묘한 시기에는 물 마시는 장면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하거나 반대로 보란 듯이 일부러 마신다. 정치인이 물을 마시는 모습의 사진설명은 그냥 ‘어디에서 누가 물을 마시고 있다’고 단순하게 객관적 장면을 서술할 뿐이지만, 보는 사람은 각자가 인식하는 정보를 더해서 사진을 해석하고 메시지를 창조한다.
은행 점포 신문에 관련 사진은 대부분 한 장만 실리지만, 한 장이기 때문에 오히려 다양한 해석을 불러온다. 사진은 가장 객관적이면서, 가장 주관적이기도 하다.
운동선수, 코로나19 의료진, 농성 중인 노동자, 산업현장의 노동자가 물을 마시는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무서류대출 시합에 나간 운동선수, 시위현장의 노동자, 코로나19 때 고군분투하는 의료진 등 물을 마실 때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유독 정치인들은 함부로 물을 마시지 않는다. 물을 마시는 장면이 모두 ‘뉴스’가 되는 것도 아니지만 당사자들은 그 당시 ‘물을 마시는 장면이 언론에 실리면 안된다’는 나름대로 상황인식이 있었던 것이다. 결국 그날 추 대표는 사진기자들이 모두 퇴장할 때까지 물을 마시지 않았다. 정치적으로는 그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을 것이다. 그러나 물은 그저 하나의 상징에 불과하다. 물 마시는 장면이 나가지 않았을 뿐이지 두 사람 사이의 갈등을 표현할 수 있는 다른 장면이 다음날 신문을 장식했다.
지난해 5월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 2년 국민보고 및 기자회견’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물을 마시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친윤과 비윤이 신경전을 벌이며 허송세월하는 동안 정작 윤 대통령은 쇄신은 커녕 비상계엄이라는 황당한 카드를 들고 나왔다. 이후 대통령에게 계몽(?) 당해야만 하는 국민만 벌컥벌컥 물을 마시며 타는 속을 달랬다.
윤운식 선임기자y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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