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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기업을 상대로 ‘기후소송’을 제기해 10년 동안 법적 투쟁을 벌여온 페루의 농민 사울 루시아노 리우야(44)가 자신의 고향인 우아라스 지역의 빙하호수 앞에 서 있는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페루 서부에 위치한 우아라스는 높은 안데스산맥이 품은 거대한 빙하들을 머리 위에 지고 있는 도시다. 빙하는 녹아서 호수를 만드는데, 호수의 물이 갑자기 불어나서 발생하는 홍수를 ‘빙하 폭발 홍수’(빙하홍수, GLOF·Glacier Lake Outburst Flood)라 한다. 빙하홍수는 고산지대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아갈 수 있는 ‘시한폭탄’이다. 실제로 1941년 우아라스는 팔카코차 호수에 발생한 빙하홍수에 휩쓸린 적이 있고, 당시 1800~60
모네타 금융계산기 00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된다. 기후변화 때문에 빙하가 녹는 속도가 가속화되고 있는 오늘날, 빙하홍수 발생의 위험은 그 어느 때보다 높다고 과학자들은 경고한다.
2015년, 우아라스에 사는 농부 사울 루시아노 리우야(44)는 빙하홍수의 발생 위험을 높인 책임을 지라며 독일의 에너지기업 알베에(RWE)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화석
직장인대출서류 연료를 때워 전기를 만들어 온 알베에 같은 기업들이 그간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해 인위적인 기후변화를 일으켰기 때문에, 안데스산맥의 빙하가 녹아 자신의 집이 홍수 피해를 볼 위험이 증가했다는 것이다. 인위적인 기후변화를 일으킨 온실가스 배출량 가운데 알베에는 0.47% 책임이 있으니, 이에 비례해 우아라스 지역이 홍수 피해를 막는 데 필요한 전체 350만달러
한국 자동차 회사 비용 가운데 1만7500달러를 내야 한다고 루시아노 리우야는 주장했다. 남미의 농부가 유럽 최대 ‘오염기업’에게 기후변화의 책임을 물은 이 사건은 ‘사울 대 알베에’(Saul vs. RWE)란 이름으로 전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지난 28일(현지시각), 독일 함 고등지방법원은 최종심을 통해 지난 10년 동안 진행되어 온 이 사건의 일단락
대출 을 지었다. 루시아노 리우야가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너무 낮게 나타나, 소송을 더 진행하기 어렵다며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 것이다. 법원은 전문가들의 의견을 청취한 결과 “빙하 호수의 물이 앞으로 30년 안에 원고의 집에 도달할 확률이 약 1%로 나타났는데, 이는 너무 낮은 수치”라고 결론 내렸다. 그러나 이날 패소한 루시아노 리우야 쪽은 이번 판결이 “획기
소속대학미정 적인 ‘기후 판결’”이라며 환영하는 입장을 내놨다. 패소한 쪽이 되레 기각 판결을 환영한 이유는 뭘까?
지난 28일 독일 함 고등지방법원에서 패소한 뒤, 사울 루시아노 리우야를 대리한 변호사 로다 베르헤옌(오른쪽)이 노트북을 통해 페루에 있는 루시아노 리우야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AFP 연합뉴스
이번 판결은, 무엇보다 독일 민법에 따라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책임을 묻는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확인했다는 데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독일 민법 1004조는 자신의 소유권을 침해하는 요소에 대해 제거·예방을 청구할 권리를 보장하는데, 루시아노 리우야는 주로 이 조항을 근거로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그 적격성을 인정했다. 비록 루시아노 리우야는 패소했지만, 앞으로 누구든 같은 방식으로 온실가스 ‘고배출’ 기업을 대상으로 법적인 책임을 물을 수 있게 된 셈이다.
함 고등지방법원은 이날 낸 보도자료에서 “(온실가스 배출의 결과로) 악영향을 받을 위협이 있는 경우, ‘오염자’(polluter)는 예방 조치를 할 의무가 있다. 만약 오염자가 이를 거부할 경우엔 실제 비용이 발생하기 전이라 할지라도 배출량에 비례해 해당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고 판결할 수 있다”고 명확히 밝혔다. 또 “피고의 발전소와 페루에 있는 원고의 거주지 사이에 엄청난 거리가 있다는 사실은 소송을 기각할 충분한 이유가 되지 못했다”며, 독일이 아닌 지역에서도 독일 민법에 따라 관련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사실도 명확히 했다. 롤프 마이어 재판장은 루시아노 리우야 쪽의 주장에 일관성이 있었다면서, 이번 사건은 “남반구와 북반구, 가난한 사람과 부유한 사람 사이에 발생하는 전세계적인 문제의 축소판 같았다”고 로이터에 말했다.
독일의 비영리 기후·환경 연구단체 ‘저먼워치’ 등 루시아노 리우야의 소송을 함께 제기하고 진행을 도운 단체들은 “다른 국가에도 독일(민법 1004조)과 비슷한 법률 조항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번 판결의 영향은 독일을 훨씬 넘어선다”고 환영했다. “기후과학의 발전과 판례의 증가에 따라 전세계 법원들이 곧 이런 추세를 따를 것으로 예상된다”는 것이다. 이들은 “세계 최개 석유·가스 기업 25곳이 1985년부터 2019년까지 배출한 온실가스로 인해 최대 20조달러에 달하는 피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연구 결과를 인용하기도 했다. 루시아노 리우야를 대리한 변호사 로다 베르헤옌은 “오늘의 판결은 중요한 이정표이며, 화석연료 기업을 상대로 한 ‘기후소송’과 더불어 화석연료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전세계적인 움직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 밝혔다. 최근에는 개별 기업들이 기후변화에 대해 어느 정도의 책임을 져야 하는지 방법론을 제시하는 ‘기후 귀속’ 과학의 성과가 나와, 앞으로 기후소송에 광범위하게 적용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페루 안데스산맥의 산간도시 우아라스에서 사울 루시아노 리우야가 빙하홍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저먼워치 제공
같은 날, 페루에 있던 루시아노 리우야는 “오늘 산이 승리했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소감을 내놨다. 그는 “수십년간 이 지역을 연구해왔고 내 고향이 위험에 처해 있다고 믿는 빙하 과학자들과는 다른 판결을 내린 법원의 결정에 실망”했다면서도, “이번 판결은 다른 사람들에게 정의를 요구할 수 있는 문을 열어줬다”고 평가했다. 이번 소송은 “(우아라스의) 우리처럼 우리가 초래하지 않은 위기의 영향을 이미 겪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문제”라고도 했다.
반면 승소한 알베에는 보도자료를 내고 이번 판결은 “루시아노 리우야를 지원해 독일법에 따라 전세계 기후변화의 영향에 대한 개별 기업의 책임을 묻는 선례를 만들려던 독일 엔지오(NGO)들의 시도가 실패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주장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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