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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아이 엠 러브> 스틸


ⓒ ㈜영화사 진진




이탈리아 북부 제일의 대도시이자 산업과 경제의 중심부 밀라노. 눈이 내려 세상이 온통 하얗다. 고풍스러운 저택에서 파티 준비가 한창이다. 부유한 기업가 레키 가문의 가주 생일파티가 곧 코앞이다. 가문의 구성원들이 속속 저택으로 모인다 뜨는창업 . 당연히 근사한 연회가 마련돼야 한다. 숱한 고용인과 요리사들이 바쁘게 저택 안팎을 이동하며 상을 차린다. 이 모든 과정을 총괄하는 건 저택의 안주인 '엠마'다. 모델 같은 훤칠한 키에 중년이지만 우아한 매력을 뽐내는 그는 정장 드레스를 차려입고 현장을 지휘하는 중이다.

엠마의 수고 덕분에 파티는 매끄럽게 흘러간다. 실업급여 고집 센 시아버지와 시어머니도 충분히 만족한 눈치다. 가족 만찬에서 할아버지는 마침내 엠마 가족이 오랫동안 기다려온 선언을 발표한다. 가문의 원천인 기업과 경영권을 모두 엠마의 남편 '탄크레디'와 아들 '에도아르도'에게 공동으로 상속하겠다는 확인이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완벽한 잔칫날이다.
'내조의 여왕'이 된 것처럼, 성실히 남편을 목돈만들기 보살피고 각각 기업가와 예술가로 자녀를 나무랄 데 없이 키웠다. 오랫동안 가족 일부처럼 그들과 함께 한 유모나 다른 고용인들에게도 권위와 존경을 인정받고 있다. 쉽지 않은 일이다. 오랜 노력과 균형감각의 소유자라는 것쯤은 금방 알 수 있다.
아들의 친구인 요리사 '안토니오'가 축하를 위해 자신이 만든 케이크를 들고 눈보라 속에 저택을 방 대출이자율계산법 문한다. 자신 역시 요리에 일가견이 있던 엠마는 안토니오의 실력에 반한다. 아들과 그의 친구는 완고한 어른들을 설득해 레스토랑을 새로 독립할 궁리를 진행하고 있다. 솜씨를 인정받은 안토니오의 가게에 레키 일족은 종종 들르며 인연을 이어간다. 자신이 짊어진 안주인의 책무로 평화롭고 풍요롭지만, 반복되는 일상과 수동적인 보조 역할에 갇혀 있던 엠마는 결혼 이후 보람상조원금 잊고 있던 자유를 갈망하기 시작한다.
몇 달이 지나 이제 남유럽의 여름이 도래한다. 햇볕이 쨍쨍해 선글라스 없이 한낮을 다니기도 힘들 지경인 날씨. 엠마는 오랜만에 집을 떠나 니스로 향한다. 딸 '베타'의 전시회가 열리기 때문이다.
휴양지 니스 옆 산레모를 들러 잠깐 산책을 즐기던 엠마는 우연히 안토니오를 발견하고 당황해한다. 뜻밖의 장소에서 마주친 엠마에게 안토니오는 레스토랑 식재료를 수확하는 농장이 부근이라며 동행을 권한다. 울창한 자연 한가운데에서 엠마의 심장이 고동치기 시작한다. 왜 하필 곧 손주를 볼 나이에 이런 두근거림이 멈추지 않는 걸까?

이보다 더 세련될 수 없는 치정극










▲ ?영화 <아이 엠 러브> 스틸


ⓒ ㈜영화사 진진




<아이 엠 러브>는 기묘하기 짝이 없는 영화다. 부유한 가문의 부족할 게 없는 중년 부인이 아무 맥락 없이 갑자기 아들의 친구와 불륜에 빠진다. 남편은 회사 일에 바쁘지만 아내를 소홀히 대하거나 외도를 한다는 증거는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시부모가 괄시한다거나 자녀들이 딱히 속을 썩이지도 않는다. 중년에 접어들었지만, 주인공을 만나는 이들은 입을 모아 존중과 함께 매력에 찬사를 보낸다. 현대판 귀족 부인이라 해도 손색이 없는 조건이다. 그런데도 자식뻘인 남자와 충동적인 사랑에 빠지는 건 순식간이다.

여기까지만 놓고 본다면 이 영화는 전형적인 귀부인의 일탈을 다룬 치정물이다.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불나방 같은 감정에 함락된 주인공이 사회적 통념이나 조건과 동떨어진, 그래서 비난받기 딱 좋은 위태로운 사랑에 빠진다. 그 결과는 대개 도덕적 단죄와 오랫동안 어렵게 획득한 사회적 기반의 붕괴로 마침표를 찍게 마련이다. <아이 엠 러브>는 그런 구성요소를 하나도 빠짐없이 골고루 갖춘 이야기다.
하지만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그 흔하디흔한, 대충 듣기만 해도 고개를 절로 흔들 법한 소재로 경험하지 못한 감각에 도달한다. 오감을 총동원한 감각의 파도가 연쇄적으로 해변에 쇄도하며 포말을 일으킨다. 파도가 부서지며 흩어지는 물보라에 작렬하는 햇빛이 투영돼 찰나에 무지개를 만든다. 파도 소리가 철썩하며 귓가를 타격한다. 2시간 내내 그런 감정의 소용돌이로 관객의 마음속을 밀어붙인다. 글로는 온전히 설명하는 게 불가능한 영역이다. 이건 일단 봐야만 이해할 영역이다.
물과 기름처럼 겉돌기 딱 좋은 위태로운 줄타기를 감독은 능숙하게 감행한다. 이탈리아 영화 역사에서 위대한 선배들이 닦아놓은 기반을 감독은 차려놓은 성찬 격식에 맞춰 음미하듯 남김없이 활용하길 사양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네오리얼리즘의 바로 앞에서 벌어질 듯 생생하게 꿈틀거리는 인물과 그들의 행위가 물 흐르듯 연결되고, 현실 역사와 사회의 세밀한 포착이 탄탄하고 견고한 지층을 형성해 이야기의 개연성과 깊이를 담보한다. 그렇다고 의도적으로 현학적 자세를 취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부지런한 관객이 하나 더 보너스를 챙길 수 있는 정도다. 스크린을 응시하는 관객은 이 영화가 선사하는 매혹과 정보의 홍수 앞에서 게으를 틈이 없다.
한국에서 상대적으로 덜 조명되는 편이지만, 위대한 이탈리아 영화작가들은 프랑스나 여타 영화 강국에 전혀 뒤떨어질 것 없는 거대한 계보를 축적해 왔다. 그런 전통을 충실히 계승하는 이들 중 하나로 손꼽히는 감독은 현대판 대귀족 가문의 영욕과 '온실 속 화초'처럼 시들어가던 주인공의 해방이란 코드를 객관적 관찰과 내면의 표상을 골고루 충족해가며 격렬하게 끌고 나간다.
크게 세 곳의 장소가 배경으로 등장하는데, 각각 주인공 엠마가 처한 현실(밀라노) - 갈망하던 소박한 개인의 행복(산레모) - 현실과 욕망이 격돌하며 파열음을 내는 신호(런던)을 거치며 파국과 결단의 그릇으로 작동한다. 겉도는 요소가 없이 인물-사건-배경 맥락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린다.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를 성찬










▲ ?영화 <아이 엠 러브> 스틸


ⓒ ㈜영화사 진진




소용돌이처럼 몰아치는 전개에 몸을 맡겨도 좋지만, 문득 시선을 스치는 소소한 장치의 매력 역시 간과할 수 없는 흥밋거리다. 도입부에서 압도적인 웅장함으로 관객 시선을 사로잡는 밀라노의 궁전 같은 저택은 세계 패션계를 주름잡는 이탈리아 밀라노 패션 위크 시즌에 최고급 패션 브랜드 프레젠테이션 단골 무대로 활용되는 그곳이다.

바깥은 온통 눈으로 소복하지만, 처음 들어선 이들은 길을 잃고 어지럼증 느낄 정도로 하나의 소우주를 이룬 저택 내부는 현대보다는 과거로부터 퇴적된 레키 가문의 요새 자체다. 여기에 외부에서 영입된 (러시아 출신) 엠마는 완벽하게 적응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녀의 마음속엔 정략결혼처럼 고향을 떠나 낯선 세계에서 겪는 외로움과 고독함이 언제나 잠재해 있던 셈이다.
요리강국답게 음식이 줄거리 전개에 촉매가 되는 장면들 역시 적지 않다. 엠마가 안토니오에게 매혹당하는 것도 본인 역시 한 요리 하는 실력자로서 천부적 재능을 한눈에 간파했기 때문이다. 우아하고 정교한 상류층 코스 요리 대신 안토니오가 선보이는 제철 소박한 식재료의 매력을 극대화한 레시피가 엠마의 내면을 자극하는 점 또한, 주인공의 심리 해설에 필수적인 해석 코드로 기능한다. 결정적으로 러시아의 국민 요리 중 하나라 할 소박하고 정갈한 생선 수프 '우하'가 어떻게 해석되는지 유심히 지켜봐야 할 테다.
패션 역시 주인공의 내면 묘사와 배경 풀이에 빼놓을 수 없다. 현대의 대귀족이자 파티의 주인으로 근사한 드레스를 차려입은 엠마의 자태는 패션쇼 피날레 무대로 손색이 없는 시각적 걸작이다. 하지만 화려해도 살풍경한 저택에서 벗어난 엠마가 사랑의 열병에 빠져 연인을 찾을 때, 20대 청춘처럼 현대적인 옷차림으로 다른 사람처럼 변신함을 확인할 수 있다.
안토니오와 엠마의 정사는 은유와 상징으로 채워지지만, 처음 본격적으로 육체를 함께 할 때 공들인 촬영은 마치 중무장한 중세 기사가 공들여 힘겹게 갑옷과 무장을 해제하듯 그려진다. 설명이 필요 없을 의미 전달이다.
밀라노와 산레모, 웅장한 성채 vs. 이탈리아의 풍요로운 자연이 정 vs. 반 대비되는 구성 또한 주인공의 나침반이 어디로 향할지 추리에 빠지게 만든다. 인공적 실내 장식과 화려해도 냉기가 도는 궁전의 대척점에 선 강렬하고 눈부시지만, 생명력의 원천이자 거추장스런 복식을 훌훌 벗어던지게 만드는 대자연의 경이가 황혼에 들어서기 전 두 번째 인생을 결단할 용기를 북돋운다.

해방을 향한 도전










▲ ?<아이 엠 러브> 스틸


ⓒ ㈜영화사 진진




영화는 격동적으로 주인공이 빠져드는 불꽃 같은 사랑 이야기다. 그러나 개인 치정극으로 그칠 생각은 없다. 고대 그리스 비극에서부터 축적된 이야기 원형을 구현하지만, 여백을 채우는 건 21세기 현대의 세계다. 레키 가문의 흥망성쇠는 자연스럽게 이탈리아 북부 도시국가들이 르네상스 시절부터 이어온 자본주의 맹아부터 현재에 이르는 풍운의 역사다.

할아버지에서 아들과 손자로 이어지는 기업 계승, 초국적 자본과 제휴를 통한 인수합병 논쟁은 제조업에서 금융과 유통 중심으로, 기업 전통과 고용 유지에서 이윤율로 지상과제가 이행하는 경로를 오롯이 압축한다. 툭 튀어나오는 대화에서 뿌리 깊은 인종차별 역사나 계급 관계를 떠올리는 건 어렵지 않다.
여기에 엄마의 이해할 수 없는 일탈을 본능적으로 깨달은 남매의 상반된 시각도 주목할 만하다. 다른 가족에게 말하지 못한 비밀을 공유하는 모녀가 어떻게 결정적 파국의 순간 시선을 교차하는지, 전통적인 가족 제도에 담아낼 수 없는 새로운 시대의 변화 속에서 이 여성들의 선택과 연대를 관전하는 흥미를 놓칠 수 없다.
틸다 스윈튼이란 걸출한 배우가 오랜만에 선보이는 성적 에너지와 속을 알 수 없는 모호한 개성을 태양처럼 뿜어내고, 현대 이탈리아의 또 다른 거장 알리체 로르바케르의 언니 알바 로르바케르가 엄마에게만 진실을 공유하는 딸로 합을 맞춘다.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욕망 3부작' 포문을 여는 <아이 엠 러브> 속 매혹 넘치는 세계는 이전 세대 거장, 루키노 비스콘티가 그려내던 전통의 붕괴, 시대의 황혼에서 싹트는 관능의 생동으로 관객을 사로잡을 테다. 다시 보면 더 좋은 작품의 귀환이다.
[작품정보]

아이 엠 러브
I Am Love
2009｜이탈리아｜드라마
2025.02.26. (재)개봉｜120분｜청소년 관람불가
감독 루카 구아다니노
음악 존 아담스
출연 틸다 스윈튼, 플라비오 파렌티, 알바 로르바케르
수입·배급 ㈜영화사 진진










▲ ?영화 <아이 엠 러브> 포스터


ⓒ ㈜영화사 진진